幻筆
한 자루 붓이
경계를 그려 길을 연다
─ 화면을 누르십시오 ─
丹靑界
柳以溫
류 이 온
끝내 사람을 지키고 생을 마친 무사.
가장 빛나던 아이를 위하여 이 글을 새기노라.
바라건대 그곳에서는
칼을 벼리는 일만 남고,
슬픔은 없기를.
이름류이온 · 柳以溫
따뜻함으로 세상을 대하는 사람
향년스물셋
직분호위무사 · 速劍
곁에 둔 것환도 · 비상용 장도 · 약과 한 조각

其 一밝은 아이

늘 웃음이 많았고 사람을 좋아하였으며,
하루에도 몇 번씩 천하제일의 호위무사가 되겠다 떠들던 아이.

어린 나이라는 이유로 얕보이는 일을 가장 싫어하여,
남들보다 먼저 검을 들고 남들보다 늦게 검을 거두었다.

그러고도 칭찬 한마디에는
괜히 헛기침을 하며 얼굴을 붉히곤 했다.

其 二검을 쥐면

평소에는 소란스러울 만큼 밝았으나,
막상 검을 쥐면 누구보다 눈빛이 달라졌다.

인정받고 싶은 마음도 컸고
누구보다 뛰어나고 싶다는 욕심도 분명 있었으나,

막다른 순간마다 그 아이를 움직인 것은
끝내 의로움이었다.

사람을 지키는 일을
제 이름보다 먼저 두는 아이였다.

그가 떠난 자리에 남은 것 굶주린 호랑이 앞에서
긴 환도를 쥐고 끝까지 맞섰다.
현장엔 찢긴 옷자락과
손에서 떨어진 장도만 남았다.

其 三전하지 못한 말

생전에 끝내 전하지 못한 말이 하나 있다.
아니다. 하나뿐이 아니었다.
너무도 많아 이제 와
너를 편히 쉬게 두지 못하는 나를
용서하여 다오.

사람은 죽으면 돌아오지 않는다는 이치를
나 또한 안다.
허나 이번 한 번만은 이를 거스르고자 한다.
잠시, 아주 잠시만이라도.
생과 사의 경계를 먹빛으로 흐려,
다시 너와 마주 앉아
담소를 나누고 싶구나.


─ 환필을 든 손으로 새기다 ─